
전문가 칼럼
중국의 호흡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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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식
세상 대부분의 일들은 호흡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장 비근한 예가 스포츠이다. 수영, 역도, 테니스, 골프, 승마 등에서 성패는 그 운동에 합당한 호흡을 제대로 쉴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테니스를 치는 호흡으로는 골프를 잘 칠 수 없다. 다른 예로서 만화를 읽는 호흡으로는 고전서적을 읽을 수 없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호흡으로는 명곡을 부를 수 없다. 평지를 걸어가는 얕은 호흡으로는 한라산을 오를 수 없다.
한 나라의 경제도 호흡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중국 만주 지방을 혼자서 여행한 적이 있었다. 옛적에는 우리 고구려 땅이었다는 광활한 만주 벌판을 돌아다니면서 만주의 호흡, 그리고 중국의 호흡을 느끼고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 배운 것은 시간에 있어서 우리와 그들의 차이였다. 만주의 도시들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다녀 보기도 했는데 자주 연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금방’이라는 말에 대한 우리와 중국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잠시 기다리는 것에도 익숙지 않아 2-30분 늦게 되면 관계자에게 가서 언제 출발하느냐고 묻게 되고 중국관계자의 ‘금방 떠난다’는 말에 곧 떠나리라고 기다리는데 그 금방이 중국에서는 서너 시간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그 긴 시간을 별 불평없이 기다린다고 한다.
이 사례는 중국항공사의 비능률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조급증과 중국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한 호흡으로는 중요하고 큰일을 치러낼 수 없다.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심대한 문제들을 얕고 조급한 호흡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다. 단기적인 안목과 호흡으로는 우리의 고질병들을 치유할 수 없다. 뿌리 깊은 우리의 병들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안목과 호흡이 필요하다. 그 호흡을 우리는 중국에서 배워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 배운 사실은 우리가 ‘뛰다’는 의미로 쓰는 한자 주(走)가 중국에서는 ‘걷다, 가다’의 의미로 쓰이고 중국 사람들은 포( 중국말로는 ‘파오’)를 ‘뛰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뛰는 것이 중국인의 시각에서는 걷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거대한 중국이 천천히 거보를 움직이고 있고 그 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우리가 그 뒤를 좇기 위해 허겁지겁 뛰고 있는 모습을 상징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우리말에 ‘뛰어야 벼룩’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중국과 경쟁하면서 어느 정도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피나는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가를 이 얘기는 우리에게 시사한다고 하겠다.
최근 들어 중국의 호흡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 경제의 발전 속도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성장률은 연평균 10%에 육박하고 지난해에는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무역국으로 부상했다. 국제적인 신인도에 있어서도 아직 사회주의 경제인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를 표방하는 우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의 신문들은 우리 경제가 원자재 부족으로 ‘가동 중단’의 위기에 몰리고 있고 그 주된 이유가 거대한 중국 경제가 ‘공포의 블랙 홀’로서 원자재를 싹쓸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가 방심하면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경고하고 있다. 성급한 사람들은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옛 청나라-조선조 시대처럼 경제적으로 ‘3배9고(三拜九敲;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으로 조아리는 것)’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특히 중국경제의 약진과 관련된 우리 경제의 위기적인 상황을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는데 정작 이 위기적인 상황을 앞장서서 헤쳐 나갈 정부와 정치적 리더들의 인식과 대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우리 경제의 위기에 대한 경고들은 허공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단기적인 인식과 처방에만 매달려 있는 정부와 리더들의 호흡은 너무도 얕고 단기적이다. 그러한 호흡으로는 중국경제를 따라 잡는 대책을 강구하거나 추진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영국병을 치유하고 쇠락해가는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살린 마가렛 대처가 1979년 개혁을 시작하면서 부르짖던 다음과 같은 절규와 그녀의 단호한 호흡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지금 혁신하지 않으면 영국의 위대함은 사라지고 우리는 몰락한 변방의 조그만 섬나라로서 역사책의 한 각주에만 남게 될 것이다.”
이계식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ks248@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