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세계자유무역체제의 변화와 한국의 선택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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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정
싱가폴과 일본의 자유무역협정으로부터의 교훈
최근 한국은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세계적인 추세인 소위, “양자간 자유무역 네트워크 형성”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싱가폴 자유무역 협정도 조만간 체결될 예정이며, 한국-일본, 한국-중국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해서도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으로서 이미 자유무역의 대세에 동참하고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자간 자유무역의 협정은 협상기간이 길고, 협상안건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그 목표인 세계자유무역의 실현은 당장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이미 각 회원국들이 인지한지 오래이며, 그들은 WTO라고 하는 다자간협상 틀을 벗어나 양자 또는 이웃국가간 자유무역협정에 주력하여 왔다. 이러한 WTO 내의 지역주의 현상은 이미 1960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한차례 있었고,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두 번째의 번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최근의 세계자유무역체제변화와 이에 대한 적응과정 속에서 한국은 과연 어떠한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인가?
우선 이론적으로 볼 때, 자유무역협정이 그 회원국에 주는 장단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간단히 살펴보자. 장점으로는 무엇보다도 소비자들로 하여금 값싼 물건을 소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질이나 종류를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수출기업의 상대회원국 시장에서의 수익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 경쟁기업의 국내 시장점유량 및 그 고용량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관세수입의 감소로 인한 재정수입원의 축소도 단점의 하나로 여겨진다.
정부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감안하여 결정하기 때문에 일부 이해집단, 특히 고비용 국내 산업생산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을 추진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이 다자간협상 틀에서 이루어질 때는 그 협상기간이 길기 때문에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과 연계해서 이루어 질 수 있어 어느 정도 단점을 미리 방지 또는 해소할 수 있으나, 양자간 협상 틀에서 이루어질 때는 협상이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지기 때문에 국내 산업과 고용의 감소를 미리 방지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된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에 체결된 양자간 자유무역의 협상내용을 잘 살펴보면 이러한 점들을 잘 해결해 나가고 있는 경우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싱가폴과 일본간의 자유무역협정을 살펴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로는, 서비스의 자유로운 거래 및 양국 기업의 상호 직접투자를 촉진한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로는, 무관세품목에서 농업분야를 제외했다는 점이다. 우선 첫 번째의 특징을 평가해 보자. 이론적으로 보면, 자유무역협정은 상품의 자유로운 거래이기 때문에 서비스의 교역이나 직접투자의 촉진을 자유무역협정에 넣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비스산업의 교역이나 직접투자유치가 국내 고비용 저효율 기업의 퇴출로 인한 생산과 고용의 저하를 메울 수 있다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다음, 그 두 번째의 특징을 보자. WTO의 지역주의에 관련한 규정을 보면, 양자간의 자유무역을 체결할 때 지켜야 할 사항 중, “substantially all trade"라는 문구가 있다. 이에 대한 법률적 해석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싱가폴과 일본의 자유무역협정에서 농업이라고 하는 특정 산업분야를 제외했다는 점은 분명히 규정위반사항이라는 강한 이의가 WTO 내에서 당연히 제기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싱가폴과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이번 자유무역협정은 그 두 나라에게는 처음이기에, 하나의 기준으로써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향후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체결시 이번의 협정내용이 참고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자국내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예상이 되는 경우, 양국간의 상호이해를 통하여 협상대상에서 제외를 하게 될 수가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싱가폴의 경우 농업분야가 그리 큰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협정에서 제외하더라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아 협정체결이 수월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계속 되어질 한국의 양자간 자유무역 네트워크 편입 시도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양자간 자유무역체결시 서비스분야의 교역 및 직접투자에 관한 깊은 논의와 성과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협상국을 선정할 때 국내 산업의 피해가 되도록이면 적게 하는, 그런 대상국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허 정 (싱가폴 국립대학 경제학과 조교수, ecshurj@nus.edu.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