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자본가의 이윤은 불로소득?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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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호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 ‘많은 자본을 보유하고 그것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 ‘노동자를 사용하여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주요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자본가(資本家)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다. ‘자본의 보유’와 이로 인한 ‘이익’이 자본가의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자본가의 이윤이 단순히 자본의 보유에 의해 파생되는 ‘불로(不勞)’의 소득이라는 주장의 바탕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돈을 낳다 보니 자본가는 더욱 부유해지게 돼 있다”와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자본가는 단순히 자본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희생 없이도 소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불로소득이란 그 자체로서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불로소득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의 대가로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노동이 전제되지 않은 소득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으로 인식돼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불로소득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단순히 ‘노동의 대가가 아닌 소득’을 넘어서 많은 경우에 이것이 ‘타인의 노동에 의해 창출된 소득을 부당하게 갈취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노동을 갈취한 소득?
이런 인식은 앞에 언급된 ‘노동자를 사용해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는 자본가의 정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정의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람’과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흔히 자본가의 이윤을 불로소득으로 단정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전자의 속성에 중점을 두어 ‘사용’의 의미를 ‘갈취’에 연결시키려 한다.
이런 사람들은 ‘기업을 경영하는 행위’가 소득을 창출하는 행위임을 부정한다. 즉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가 창출한 소득을 자본가가 ‘부당하게’ 갈취한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적대관계를 전제로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다.
자본가의 이윤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은 전근대적 농경 사회의 ‘지주-소작인’의 관계를 산업사회에 잘못 대입한 결과로 나타난 오류다. 지주는 토지를 많이 보유한 사람이며, 토지로부터의 수확은 전적으로 소작인의 노동력에 의해 창출된다. 따라서 지주는 소작인의 노동의 성과에 무임승차하는 자(free rider)이며, 지주가 높은 소작료를 요구하는 것은 소작인을 선택할 권리를 무기로 해서 부당하게 많은 비율의 수확을 갈취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자본은 토지와 기본적인 속성이 다르다. 산업사회에서의 시업 경영 또한 단순히 지주가 소작 계약을 맺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자본은 토지와 달리 존속이 보장되지 않는다. 일단 생산과정에 투입된 자본은 그 생산과정이 창출한 가치에 의해서만 회수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는 단순히 자본의 소유에 의해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고 적절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산과정을 선택해 여기에 자본을 투입하는 행위의 대가로 이윤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의 이윤은 수많은 생산과정 중 특정한 생산과정을 선택하는 리스크 부담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투입할 대상으로서의 생산과정을 선택하는 행위는 단순히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달라서 상당한 지적 능력의 소모를 요구한다. 경제학적인 의미에서 자본가의 이윤은 불로소득이 아닌 것이다.
둘째로 많은 경우에 자본가는 기업을 ‘경영’한다. 기업의 경영은 단순히 지주가 누구에게 소작을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는 격을 달리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이 투입된 생산과정이 적절한 가치 창출에 성공하도록 하기 위해 종업원(노동자)을 조직하고 지휘하며 그들의 행위를 모니터링하고,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다.
경제발전 동력으로서의 자본가 이윤
일부에서는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이러한 경영 행위를 ‘대행’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전문경연인의 성과를 모니터링하고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해 투입 자본의 가치 보전과 증식에 기여하는 것이 자본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의미에서도 자본가의 이윤은 불로소득이라고 보는 견해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한 현대의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 노사관계는 전근대적인 지주-소작인 관계와 크게 다르다. 소작계약에서는 노동의 질적 차별화가 이뤄지지 못해 소작인이 지주에 비해 절대적인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산업사회에서 기업의 고용 계약은 노동의 질적 차별화와 노동시장에서의 수급 관계에 기초한 평등한 관계에서 이뤄진다.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이 투입된 생산과정의 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양질의 노동을 고용하려고 노력하며, 노동자는 자신의 능력과 노동시장의 수급사정에 따라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는 기업을 선택해 고용계약을 하게 된다.
더구나 기업의 실패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자본가의 몫이 된다. 잔여가치의 분배에서 임금은 배당에 우선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우선적으로 지급된다. 또 노동자는, 자신이 보유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다른 고용자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실패로 인한 자본가의 손실은 고스란히 자본가의 몫이 된다. 노동시장에서의 공급이 수요를 현저히 초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본가가 노동자를 부당하게 갈취하는 수준의 노사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건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khlee@kdischoo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