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부작용만 낳는 사회적 규제 강화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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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준
정부 규제의 개혁과 관련해 우리는 "경제적 규제는 폐지하되 사회적 규제는 강화하라"는 원칙론(?)을 자주 듣는다. 진입·가격 규제 등 경제적 규제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유지를 위해 폐지 내지 완화돼야 하지만 환경·안전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규제는 존재의 이유가 공익에 있는 만큼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별화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장 실패에 근거해, 혹은 시장 실패를 예단하면서 만들어지는 정부 규제의 예상치 못한 폐해와 부작용은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를 가리지 않는다. 사업장의 안전 규제가 ‘사람의 생명’을 담보하고 있고, 환경·식품 규제가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규제로 인한 폐해가 비켜가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적 규제의 문제점은 중복적인 데다 준수하기가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규제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업장 안전 규제는 노동부·환경부·산업자원부 등 5개 부처의 15개 관련 법률에 중복돼 걸쳐 있다. 어떤 석유화학 업체는 한 해에만 40여 차례의 안전점검을 받은 적이 있다. 이 회사는 무려 80일 동안 안전점검을 받은 기록도 있다. 가스안전공사·산업안전공단·전기안전공사·소방서·시청 등에 이르기까지 점검 기관이 다양하고 점검 명목도 가지각색이다. 일부 비현실적인 환경 규제는 벌금을 무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덜할 만큼 이상적 기준을 강요하고 있기도 하다.
개개의 규제는 나름대로 목적과 이유가 있고 폐지할 경우 예상되는 위험도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당하는 기업은 너무도 많은 기관에서 제 각각의 이유로 점검 나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개별 규제가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 회사가 무려 80일 동안 안전점검을 받았다면 어떻게 이 현실을 설명하겠는가?
경제적 규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규제 또한 목적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폐해도 있다.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전세 계약을 2년 이상으로 의무화하자 전세값 폭등이 일어나 서민들이 더욱 고통을 겪었던 일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0년 장기이식을 활성화하고자 제정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로 인해 오히려 장기 기증 건수가 급락하고 환자들이 장기 이식이 자유로운 중국으로 몰리고 있는 것도 섣부른 정부 규제가 만들어낸 폐해일 것이다.
그것이 경제 문제이든 사회 문제이든 규제로 인한 정부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신설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규제는 그 정책 목표가 이상적이고 정책 수단의 비용 효과를 계량화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회적 규제는 쉽게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고 문제 해결 역시 매우 감정적이고 대중주의로 흐르기 쉽다.
1999년 춘천댐 상류에 유조차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는 상수원 주변 도로에 유해물질 수송 차량이 다닐 수 없도록 하는 통행 제한 규제를 만들었다. 같은 해 수원에서 씨랜드 화재 사고가 나자 이번엔 소방법상의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국민의 비난 여론에 대한 정부의 처방은 오로지 규제 강화였다. 그러잖아도 많은 규제에 실효성도 고려하지 않은 이중삼중의 규제를 덧씌운 것이 사고 방지책이 될 수 있을까?
1998년부터 시행된 행정규제기본법은 규제가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경우 규제영향 분석을 거치도록 의무화돼 있다. 문제는 사회적 규제가 여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다. 사고에 따른 사회적 비난 여론에 밀려 급조되는 규제는 법률이 정한 심사 과정을 형식적으로 만들 우려가 크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사고라도 조사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린다. 우리가 세심한 분석 없이 서둘러 만들어내는 규제치고 제대로 된 것을 찾기 어렵다.
사회적 규제는 대부분 한두 건의 사건·사고가 규제 신설이나 강화의 구실이 된다. 냉철히 생각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탈일 수 있는 행위가 전체적인 문제로 비약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모든 예상 가능한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경향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규제는 거의 예외 없이 비현실적이거나 불합리한 면을 드러내게 되며 결과적으로 집행 과정의 부정부패를 만연시키게 된다.
통상 사회적 규제라고 하지만 이것이 경제적 규제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대표적인 사회적 규제라고 할 수 있는 환경 규제는 기업의 생산활동과 소비자의 소비 과정과 필연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다. 생산 과정에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환경비용, 소비된 후에 처리해야 하는 환경비용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를 구분해 다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회적 규제도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고 국민을 구속하는 울타리로 작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규제의 필요성은 그 규제가 가져올 비용과 편익을 냉정하게 분석한 결과에 의거해야 한다. 이 규제가 시장에 친화적인가, 규제의 기준은 적정한가, 이 규제가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깊은 검토가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공익이라는 명목으로, 또는 여론에 영합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규제의 강화를 외치기보다 우리가 가진 비현실적이고 질 나쁜 규제들을 먼저 줄여 나가는 것이 순서다.
임상준 (국무총리실 과장 ·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monticello@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