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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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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지주회사는 경영권 확장의 도구인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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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지주회사는 경영권 확장의 도구인가? 경영 효율화를 위한 기업의 조직 선택인가? 최근 지주회사 설립 허용이후 지주회사는 기업의 경영권 확장의 도구라는 수단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기업구조조정 수단으로 그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LG 그룹과 GS 그룹의 계열분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지주회사제도는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04년 5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는 일반지주회사 19개, 금융지주회사 5개사가 신고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산총액(자회사 및 손자회사 포함)은 440조원에 이르고 있다.


지주회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 정부는 지주회사 설립에 엄격한 요건을 부과하고 있다. 가령 지주회사가 기업 확장의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그 부채비율이 10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자회사 이른바, 손회사도 설립할 수 없다. 이는 부채로 자회사를 인수하고, 그 자회사가 다시 자회사를 인수하는 이른바 피라미드식 계열 확장을 차단하기 위한 규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시장 환경에서 지주회사에 대한 이러한 과도한 규제가 필요한가? 지주회사의 역사가 오래 된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반에 적은 자본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기업지배구조이론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벌리와 민즈(Berle and Means)의 「현대 기업과 사유재산」(The Modern Corporation and Private Property)에 나오는 지주회사의 사례는 이를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O. P. and M. J. Van Sweringen 지주회사는 피라미드 방식으로 8개의 철도관련 회사를 지배하였다. 당시 이 지주회사는 2천만 달러 미만을 투자하여 총 자산 규모가 20억 달러가 넘는 8개 철도기업을 인수하였다. 제일 하위에 있던 Hocking Valley Ry. Co.는 최초 지주회사 지분이 0.25%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중층적 기업 지배가 오늘날에도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의 경우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회사나 계열회사에 대한 모기업의 지분은 거의 100%에 가깝다. 작은 지분으로 지배하기에는 소액주주의 간섭이나 소송 위험도 높고, 적대적 인수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기업들이 출자지분을 높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의 자유화로 오늘날에는 자본이 수익률이 높은 곳이면 쉽게 국경을 넘나든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하여 무능한 경영진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자본시장이 과거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가공자본으로 기업을 확장한다면 그 기업의 가치가 쉽게 시장에 노출된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99%의 타인자본(부채)과 1%의 자기자본을 가진 기업을 가정해보자. 이 경우 자기자본의 51%, 즉 총자본의 0.5%를 보유하면 기업가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이 기업처럼 부채비율 9,900%인 지주회사가 존재할 수 있으나 이 기업은 현실의 시장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왜 그럴까? 소유권이 이처럼 집중된 구조에서 기업주는 채권자를 희생하여 위험한 투자를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위험을 보상받기 위하여 이 기업에 대해서는 금리를 매우 높이거나 대출조건을 훨씬 까다롭게 설정할 것이다. 부채비율이 높은 이 기업은 금리차이 때문에 정상적인 기업과 경쟁하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정상적인 자본시장에서는 부채를 이용하여 기업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 시장 압력에 따라 자동적으로 제어된다.


경영권 시장도 기업지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인수기업이나 인수중개회사들은 경영권 지분이 작은 자회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할 수 있다. 작은 지분으로 자회사를 보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상품시장의 경쟁도 중요하다. 만약 차입으로 인수한 자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률이 금리를 하회한다면 자회사 인수는 비효율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 상품시장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무분별한 자회사 인수는 자동적으로 제어된다.


결론적으로 자본시장, 경영권 시장, 상품시장 등의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한다면 지주회사를 통한 중층적 계열 확장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부채비율 100%이하, 자회사 지분 50%이상, 손회사 금지 등은 시장기능에 맡겨도 얼마든지 규제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상품시장, 자본시장, 경영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지주회사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은 선진국 수준으로 완전하게 개방되었고, 기업 인수합병 제도도 크게 바뀌었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상회하는 우량기업들은 더 이상 외국투자자의 감시를 무시할 수 없다. 최근 한 외국계 투자회사가 몇몇 그룹의 지주회사 지분을 매입하면서 대기업의 경영권을 크게 흔들고 있는 현상도 경영권 시장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주회사제도가 경제력집중을 심화하는 효과보다 기업 조직변경의 주요한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독일 벤츠 그룹의 경우 지주회사는 사업부를 독립자회사로 분리시켜 경영효율성 개선을 도모한다. 독일에서도 지주회사의 형태와 구조에 대해서는 독점금지법의 규제는 없다. 한국과 함께 지주회사를 금지하던 일본도 1998년부터 지주회사 금지를 원칙적으로 해제하였다. 최근 세계적인 거대 금융기관간의 M&A도 유행하고 있다. 이들 금융기업의 조직재편에는 지주회사 형태가 자주 이용되어 구조조정의 핵심 기능을 하고 있다. 미국의 트래벌러즈 그룹과 시티코프의 합병이나 일본의 후지은행, 야스다 신탁, 야스다 생명보험, 야스다 해상화재 등의 금융기관 합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합병뿐만 아니라 기업분할(spin-off)에도 지주회사 형태는 자주 활용된다. 최근 도시바의 경우 일본 제조업체로서는 처음으로 회사 전체를 순수지주회사와 AV기기, 정보통신, 전자부품 등의 사업회사로 재편하는 대규모 기업분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지주회사는 경영권 확장의 도구가 아니며 기업 조직의 한 형태,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주회사 규율은 더 이상 정부(규제)가 아니라 시장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재우 (동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jaewoo@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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