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산별노조로의 전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0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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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현대차·대우차·기아차 등 자동차 회사 노조와 로템·두원정공 등 노조 13개 8만 7천명이 지난 6월 30일 금속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기존 4만 2천명을 포함해 모두 12만 9천여명 규모의 거대 단일 산별노조가 됐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산별노조 전환을 두고 향후 다른 업종의 산별노조 전환이 가속화 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실제 노조 조직율의 지속적 하락, 파업 난발과 노동계의 내부 비리로 인한 국민의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 시각 그리고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이 금지되고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기업별 노조체제로의 협상력 약화 등의 위기감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이러한 문제의 극복차원으로만 노동계가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산별노조 자체가 갖고 있는 장점도 없지 않아 있다. 먼저 노동조합의 인력과 재정이 중앙에 집중되기 때문에 개별 기업 노조보다는 훨씬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하여 근로자의 권익을 신장시킬 수 있고 또한 전임자 급여나 노조사무실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개별 사업(장) 단위를 넘어 초기업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복수 노조의 도입에 따른 어용시비를 불식시키는 등 노조의 자주성을 회복할 수 있는 조직형태이다. 뿐만 아니라 산별노조는 단체교섭 구조가 중앙단위로 집중되어 교섭비용이 절감될 수 있고 또한 동종 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산별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기업간 임금격차나 근로조건의 차이를 완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산별노조의 장점이 우리 현실에 부합되느냐이다. 먼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가 큰 우리 사회의 여건을 감안할 때 산별교섭은 대기업 노조원들은 손해를 보고 중소기업체는 경영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경영여건이 다른 사업자의 노사가 일괄교섭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산별노조는 중앙단위에서 교섭이 이루어지더라도 지부 또는 지회별로 이중, 삼중으로 교섭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교섭비용이 증가한다. 특히 산별노조 체제가 구축되면 가뜩이나 정치적, 전투적 성향이 강한 노조들의 정치 성향은 더욱 강화되어 노사간의 문제가 아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등과 같은 각종 정치,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면서 파업 등으로 노사관계와 경제 전반에 불안감을 심화시킬 우려마저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기업경영환경에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무한경쟁시대에 과연 산별노조가 적합한 노조 조직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산별교섭에서 단위사업장별 교섭으로 바뀌고 있다. 산별협약을 반드시 지키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독일에서도 산별교섭 대신 기업별 교섭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지멘스는 지난 해 임금인상 없는 근로시간 연장에 노사가 합의했고, 다임러-크라이슬러도 2012년까지 고용조정을 하지 않는 것을 대가로 임금동결에 합의했다. 이와 같이 산별노조의 원조로 통하는 유럽에서는 산별노조를 탈피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인데 오히려 국내에서는 뒤늦게 산별교섭을 지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따라서 우리 노동계는 이미 한물간 산별노조 결성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먼저 왜 노조 조직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국민들이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