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기술유출 방지, 현행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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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최근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매각이나 LCD분야의 비오이하이디스 등 최근에 발생한 기술유출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상하이 자동차의 쌍용차 핵심기술 논란은 2004년 회사매각 때부터 제기된 문제이다. 당시 상당수 산업전문가들은 완성차제조업이 첨단기술을 총망라한 전략산업이라는 점을 들어 쌍용차가 독자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했었다. 쌍용차의 노사갈등은 극적인 잠정합의로 막을 내렸지만 중국 투자자들이 투자지연과 연구개발을 등한시할 경우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비오이하이디스는 TFT-LCD를 생산하는 업체로 2003년 중국 비오이그룹에 매각되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은 중국에 인수합병된 이후 기술유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향후 중국기업들이 자동차, 반도체, LCD 등 첨단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을 적극 추진한다고 보면 앞으로도 이 같은 기술유출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해외유출은 해외매각, 기술수출 및 이전, 인수합병 등과 같이 현행법상 허용되는 기술이전과 기업임직원의 전직이나 퇴직, 산업스파이활동 등을 통한 불법적인 기술유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산업자원부에 의하면, 최근 외국기업에 의한 불법적인 기술유출 시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2004년 8월까지 해외 기술유출 46건을 적발하였고 이의 피해예방액은 약 44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중국 등 후발국은 물론 선진국의 경쟁업체들까지 국내기업의 핵심기술을 빼내 가려고 시도하고 있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이러한 기술의 해외유출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기협의 기업연구소 산업기밀관리실태 조사에 따르면, 기술보안을 위한 조직, 인력 제도 등 시스템이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규정을 제정?운영하는 회사는 36.3%, 보안담당부서를 설치한 회사는 12.9%, 보안문서관리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24.9%에 불과하였다. 대기업보다는 중소벤처기업의 기술보안시스템이 더욱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법적인 인수합병에 의한 기술이전을 현행법으로 제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국가안보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첨단기술인 경우 해외 기술유출을 일정부분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엑슨-플로리오법을 통해 자국의 주요 전략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엑슨-플로리오법은 문제된 인수합병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대미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에 부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은 일정한 조치를 취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자국 안보와 주요기업 보호차원에서 엑슨-플로리오법에 저촉될 경우 대통령은 외국인들에 의한 자국기업의 인수합병, 경영권 취득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 법의 취지는 미국 내 외국인투자를 감소시키거나 미국 내 산업을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며 이 법 제정 후 실제 집행단계에서도 이 법이 미국 내 외국인투자를 심대하게 제한하거나 여타 보호주의적인 목적으로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88년 이후 대미외국인투자위원회는 1500 이상의 사건을 접수하고 그 중 25건에 대한 검토에 착수하였으나 최종 검토대상이 된 12건 중 1990년 중국 국립항공기술수출입공사(CATIC)가 미국 Mamco사를 인수하려는 계획을 철회토록 한 1건에 대해 제재조치가 취해졌을 뿐이다.
최근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유출이 증가하면서 첨단기술 유출방지에 대한 경제계와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졌다.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 발의된 것은 첨단기술 유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법제도적인 장치가 취약한 상태다. 예컨대 부정경쟁방지법은 1991년 영업비밀보호를 위해 제정되었으나 적용범위가 기업의 영업비밀에 한정되는 문제가 있다. 합법적인 기술이전에 해당하는 인수합병, 기업의 해외매각 등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기술유출로 발생하는 문제는 통제할 법제도가 취약한 상태이다. 우리의 경우 산업기술 유출방지를 위해 국가핵심기술의 해외매각 시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의 보안관리 등을 명시하고 있는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 지난 2004년에 국회에 제출됐으나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국 내 외국인투자를 감소시키지 않고 외국기업과의 경쟁을 현저히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가적인 방위산업 이외에도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의 전략산업에 대해서는 첨단기술의 해외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제도의 정비와 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