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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이제 정책금융은 재고되어야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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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석

정책금융은 정부의 의지를 구현시키거나 관철시키고자 할 때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정책금융은 특수한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정당화되었으나, 근래에는 시장에서 생성되는 결과가 정부의 판단에 합당치 않을 때 작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책은행을 통한 정책금융은 고도성장기에 대규모 산업화를 위한 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어려울 때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 특수성이 사라진 현재, 정책금융을 지속하는 것은 유용성보다는 유해성이 더 크다. 정책금융은 정책의 오류가능성이 있고 특히 시장의 공정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 현안 중 하나로 정책금융문제가 제기된 것은 정책금융이 시장에서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는 유해성이 지적된 것이다. 미국협상팀은 외환위기 당시 하이닉스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지원을 예로 들어 정책금융을 통한 한국정부의 금융시장 개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이것을 요구한 이유가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번 한미 FTA 협상을 계기로 정책금융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나라에서 정책금융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을까? 어떤 경제적 특수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경제개발계획시대의 경우 무엇보다도 필요로 했던 것은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할 자본의 집중적 투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한국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한 정책금융에 의해 가능했다. 즉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성장목표가 국책은행을 통한 정책금융을 정당화한 것이다. 그 결과 기업들은 정부와 국책은행들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현실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외국의 압력으로 인해 정부는 시장에 대한 규제를 많이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자금조달 방식도 변화되었다. 과거에는 자본이 부족한 환경에서 대형자금의 조달을 위해서는 은행의 대출, 특히 국책은행의 정책자금에 의존했던 반면, 현재는 국내자본뿐만 아니라 외국자본이 풍부한 환경 하에서 기업은 언제든지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정부나 국책은행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처럼 경제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불리한 시장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여전히 정책금융을 사용하고 있다. 정책금융은 무엇보다도 특정기업이나 산업을 선별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국내·외 시장에서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좋은 예가 LG카드 사태의 처리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관련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내린 결정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을 막은 경우이다. 금융권 전체가 불안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모자란다. 카드사 하나의 부실처리가 금융시스템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면 외환위기 이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구축한 금융 감독시스템이 유명무실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을 믿지 못하고 정책금융 등을 통해 시장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정부가 시장의 힘을 인정하고 시장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데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이것을 인식하고 고이즈미 정권 시기에 정책금융에 대한 개혁에 성공하여 현재 추진 중에 있다.


미국측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을 위해서 국책은행을 통한 정책금융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 협상팀이 정책금융을 우리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한미 FTA 협상을 계기로 앞으로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정책금융은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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