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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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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실속있는 남북경제협력회의가 되어야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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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호

남북은 지난 4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평양에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이하 경추위) 제13차 회의를 개최하고 10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을 채택·발표하였다. 이번 회의는 작년 6월초 제12차 회의 이후 10개월 만에 열리는 회의였다.

통일부는 해설 자료를 통해 ‘열차시험운행과 경공업·지하자원개발 협력 일괄타결’에 큰 의의를 부여하는 등 회의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이번 경추위 결과 보고를 접하고 “학점으로 따지면 ‘수’를 주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경추위 제13차 회의가 진행되었던 과정과 합의문을 중심으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지난 해 6월 개최되었던 제12차 회의에서 도출되었던 합의문과 비교할 경우 금번 합의문에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합의를 제12차 회의의 합의와 항목별로 비교해 보자. 금번 합의문 제4항(개성공단 건설 활성화)은 지난번 합의문 제3항과 동일하고, 금번 제5항(남북공동진출)은 지난번 제6항과 동일하다. 이러한 식으로 비교하고 나면 남은 항은 금번 합의문 제9항, ‘쌀 40만 톤 제공’만이 남게 된다. 특히 금번 합의문에서 주목받고 있는 제2, 3항, 즉 ‘열차시험운행과 경공업·지하자원개발 협력 일괄타결’도 지난번 합의문 제1항과 동일하다. 금번 합의문이 열차시험운행의 구체적인 날짜를 적시했다는 사실 또한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소위 ‘군사적 보장조치’가 구체적으로 약속되지 않은 합의는 날짜의 적시가 갖는 의미를 퇴색시킬 수밖에 없다.

둘째, 합의 사항이 실행될만한 주변 환경 또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 12차 회의 이후 7월 초 미사일 발사, 10월 핵실험 등의 사건으로 인해 합의 사항을 제대로 실행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없다. 금번 합의사항도 지난 6자회담의 ‘2·13 합의’에서 명시한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의무를 수행한 이후에나 실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의무는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자금을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바로 이어서 핵폐기의 수순으로 핵시설 폐쇄 및 봉인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입북을 허용해야 한다. 북한이 과연 이러한 수순을 밟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셋째, 우리 정부가 너무 조급하게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2·13 합의’ 초기조치 이행시한을 넘기는 시점에서도 “남북간 합의된 일은 반드시 지키는 게 신뢰를 쌓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경추위를 예정대로 추진시킨 것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회담장에 앉기도 전에 다 드러내는 것과 같다. 경추위 합의사항에서 경공업·지하자원개발 실무협의를 5월 2∼4일 개최하겠다고 적시한 것도 성급한 조치이다. 열차시험운행을 5월 17일에 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그보다 2주 앞당겨 실무협의를 할 경우 실무협의의 결과가 북한의 열차시험운행 실행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있겠는가? 혹은 역으로 북한이 열차시험운행을 실행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실무협의에서 또 다른 무엇을 약속해야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떻게 할 수 있나?

물론 필자가 경추위 합의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한 면도 없지 않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북한이 BDA 해법을 조속히 수용하고 핵폐기 수순을 밟는 등 ‘2·13 합의’ 초기조치를 이행함과 동시에 군부의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져 열차시험운행이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추위 합의 사항뿐만 아니라 ‘2·13 합의’가 약속대로 진행되고 ‘9·19 공동성명’이 지켜지는 결과도 가져온다. 학점 ‘수’도 함께 취득하게 된다.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 제대로 받아 넘기느냐는 전적으로 북한의 의지에 달려있다. 북한은 다시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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