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합리적 인간, 부도덕한 정책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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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화
지난 6월말부터 본격화되었던 이랜드 계열사의 노사분규가 결국 공권력의 투입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분규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의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가 비정규직 근로자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통과되면서 예상되었던 일이기도 하였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계속 고용하였을 때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면 고용비용이 큰 기업들은 이들을 해고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이 결국 비정규직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예상된 일이 발생하였지만, 이러한 법안의 입법에 일조하였던 당사자들은 말이 없고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한 기업과 불법파업을 일으킨 비정규직 근로자들만 비난받고 있다. 잘못된 정책에 따른 비용을 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잘못된 정책을 반성하기보다 이해당사자들만 비난받는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임대차 보호법이 대표적이다. 10여 년 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당시 정치인, 일부 시민운동가와 일부 경제학자들이 나서서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법이 통과되면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세입자들이 집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였지만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에 변변한 토론도 없이 법은 통과되고 말았다.
세를 놓아본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 같으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기존 세입자에게서 전세 값을 올려 받기 힘들게 되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값을 올려 받으려고 할 것이고, 2년 이상 세를 놓아야 한다면 전세공급 물량은 줄어들어 세집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실제 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전후로 전세 값은 폭등하였고, 많은 기존 세입자들이 정든 집을 떠나야 했다. 절망한 일부 세입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법안을 비난하는 소리는 적었다. 그리고 이러한 법안을 제정하도록 한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 그리고 경제학자들에 대해 비난하는 소리도 없었다. 오히려 집세를 올려 받은 집주인을 비난하였고 집주인의 임대소득에 대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나서야한다는 소리만 크게 등장하였다.
시장경제에서 개인은 자신의 책임 하에 자신의 행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자신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나 제 3자에 비하여 훨씬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 비정규직 시장은 현재의 경직적인 정규직 시장에 반응하여 기업이나 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하여 형성된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는 근로자는 누구보다 정규직을 바란다. 훨씬 높은 급여와 안정된 직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근로자들은 실업보다는 열악한 비정규직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고용비용이 똑같다면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를 원한다. 정규직일수록 기업에 대한 애사심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노동조합이 비합리적인 노사분규를 자주 일으킨다면 기업은 임금대비 생산성이 훨씬 높으면서도 노사분규의 우려도 없는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비정규직 시장은 노사 모두 경제여건에 합리적으로 반응한 결과 형성된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제정되어 여건이 변화하면 노사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기업은 고용기간이 2년이 되어가는 비정규직 사원을 해고하고, 새로운 비정규직을 사원을 고용하거나 외부 용역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이러한 결과를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작 어렵게 된 것은 계약해지로 일자리를 잃게 된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비정규직 근로자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는 기업, 생계가 막막해져 불법적인 노사분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 이들을 모두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것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법이요, 이러한 법률을 입법하도록 한 노동조합, 그리고 정치인들이다.
이들 정치인들은 이러한 결과가 초래될지 알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리고 법안의 취지 자체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었고 자신들의 진정성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도덕이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설혹 진정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하여 입법을 하였지만, 그 결과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피해를 주게 되었다면 이를 반성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도 갖는 게 인간의 도리다. 진정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서 인센티브에 합리적으로 반응한 개인들을 비난하는 것이야 말로 부도덕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법안을 고치는 것이 바른 자세이다. 무지는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책임회피는 용서받기 힘들다.
정기화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ckh8349@chon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