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미국의 구제금융안 합의 의미와 전망
08.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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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권
미국 정부와 의회가 금융위기 타개를 위한 구제금융 협상을 우여곡절 끝에 타결했다. 이제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 부실채권을 매입하여 부실금융기관의 회생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해소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구제금융의 규모가 사상 최대인데다 대부분의 금융 부실을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 전 세계 금융시장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발발 이후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된 것은 부실 규모와 대상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거미줄처럼 얽힌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금융상품의 특성상 새로운 부실이 계속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을 포함한 주요 금융기구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추정 부실규모는 계속 늘어나 초기의 5,000억 달러에서 최근에는 2조 달러 이상으로 늘어났다.
올 들어 미국이 수시로 발표한 구제금융 규모는 이번의 7,000억 달러를 포함, 총 2조 달러에 육박한다. 규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구제방법인데 이번 방안은 경제의 혈맥에서 막힌 부분을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 성격이 짙다. 그동안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 및 AIG 등 개별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방편적인 구제금융의 한계를 직시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한 것이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부실금융기관도 정리하여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의 경영부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한다는 도덕적 해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역경매방식에 의한 부실채권 최저가 매입, 구제대상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 연봉제한, 부실자산 매입규모에 비례한 수수료 징수 등 부실경영에 대해 책임을 묻기로 한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
이 정도의 공적자금으로 과연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지만 성공여부는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 관리능력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과의 공조를 통한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 조율능력도 관건이다.
그러나 부실금융기관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국채발행으로 조달하므로 늘어날 재정적자가 미국 경제에 큰 짐이 될 전망이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될 경우 달러가치의 하락요인이 되며, 달러약세가 될 경우 투자자금이 원유 및 상품시장으로 쏠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게 된다. 물가상승압력이 높아질 경우 미국 경제의 경기침체를 유발하게 되며, 이는 세계경제의 성장둔화추세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이번 구제금융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금융시스템의 정상화가 경제 헤게모니 유지의 핵심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선 외국자금을 환류시켜 막대한 재정 및 무역적자를 메워야 하는데 금융 불안이 해소되어 미국 금융시스템의 신뢰회복이 이루어져야 미국에서 나간 달러화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달러화의 리사이클링(재환류) 체제가 정상화되어야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상 붕괴도 막을 수 있다. 역으로 달러화의 기축통화지위를 지켜야 달러화의 리사이클링체제 유지도 가능하다.
금융시스템의 신뢰 회복이 미국 경제 회복의 실마리이다. 금융이 안정되어야 실물경제의 회복이 가능하고, 실물경제가 회복되면 내년 하반기쯤 부동산경기도 바닥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경기가 회복되어야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해결도 가능하다. 이번 대책으로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나기는 하나 일단 경제가 살아나야 세수가 늘어나 재정적자가 줄어들 수 있다. 헐값에 사들인 부실금융회사들의 회생작업이 실효를 거두어 주식 가격이 크게 오르면 수년 후에는 재정적자 감축에 한몫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또 금융부실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금융부문에서 만회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금융부문의 강점은 최대한 살리되 이미 발표한 주식공매도 제한 등 약점을 보완하는 개혁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무분별한 대출관행 및 금융감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는 가급적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창의적인 금융상품의 개발로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떼돈을 벌어들인 미국 금융회사들의 손발을 왜 미국 정부가 스스로 묵으려 하겠는가. 골드막삭스, 메릴린치 등은 상업은행과 제휴하는 은행지주회사 전환을 계기로 세계시장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난해 이후 지속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안 확정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금융부실이 정리되는 데는 1~2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고, 실물경제에 불어 닥친 냉풍이 온풍으로 바뀌는 데도 상당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세계경제의 흐름변화와 글로벌 금융질서의 재편향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선진경제 도약이 가능하다. 위기관리 능력 및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내부개혁과 경제 리더십 제고가 절실하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kah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