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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산운용시장 육성전략 재검토해야

09.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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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칠

참여정부에서 가장 야심차게 추진했던 금융정책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금융중심지법 제정을 통한 금융허브 추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정부가 염두에 두었던 핵심적인 전략은 우리나라 자산운용시장을 동북아 금융거래의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자산운용시장 육성은 우리나라 경제에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경쟁력을 갖춘 다수의 국내외 자산운용회사가 출현함으로써 고급인력 수요가 늘어나고, 펀드 판매·자산 보관 및 사무수탁 등 유관산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시장의 성장을 통한 경쟁과 혁신은 원천자금 공급자인 투자자에게 보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낮은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운용 철학과 방법이 상이한 여러 자산운용회사들이 등장하면 성장성이 높은 숨겨진 알짜 기업들이 자산운용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질 것이다.

위와 같은 경제적 장점들을 생각해 볼 때 자산운용시장을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육성전략이다. 정부는 해외 유수의 자산운용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법인을 설립하여 내국인을 고용하고, 펀드를 만들어 국내에 등록하는, 소위 금융허브형 육성전략을 지향하고 있다. 금융중심지법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허브형 자산운용시장 육성전략은 아태지역에서 이미 싱가포르가 선점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1990년대 말부터 자산운용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규모로 인해 자국 내 펀드 수요를 확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정부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 자산운용회사들이 자국에 진출하여 펀드를 등록하고, 자국에 등록된 펀드를 여타 국가 투자자들에게 판매토록 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싱가포르 정부는 해외 자산운용회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등록요건을 크게 완화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함과 동시에, 싱가포르 내에 등록된 펀드에 외국인이 투자할 경우 투자소득에 면세혜택을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싱가포르에 등록된 펀드 규모는 아태지역 최고 수준이 되었고, 투자자의 대부분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등 싱가포르는 아태지역의 명실상부한 자산운용 허브로 격상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아태지역 자산운용 허브로 구축하려는 전략은 냉철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전략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외국계 자산운용회사와 우리나라에서 설정된 펀드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재정여건의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데, 향후 수년간 적자예산이 예상되고 있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해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 보건대 외국 자산운용회사 및 외국인 펀드투자자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산운용 허브 구축에 필수적인 언어와 문화적 이질감 극복 또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반면 우리나라 자산운용시장의 수요 창출 잠재력은 대단히 우수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5대 자산운용시장 중 하나인 호주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대비 자산운용시장 규모가 아직도 미약하다는 사실은 역으로 시장여건의 조성여부에 따라서 얼마든지 성장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10년 이후 국민연금 및 퇴직연금 등 자산운용시장의 잠재고객이 될 연금자산이 본격적으로 축적될 전망이어서 미래는 아주 밝다.

따라서 당분간은 잠재력이 높은 내국인의 펀드수요를 확충하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내시장의 성장을 통해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해외 자산운용회사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호주도 연금시장의 성장을 바탕으로 자산운용시장이 급격하게 커졌고, 그 결과 많은 해외 자산운용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국내 펀드 수요의 확충을 위해서는 장기투자에 대한 상시적인 세제혜택, 국민연금의 외부 위탁운용 확대, 퇴직연금 가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및 운용규제 완화 등 지금까지 많이 논의해 오던 과제들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물론 시장의 기본적인 룰 구축과 이를 통한 투자자 신뢰확보는 어떤 정책적 노력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jckim@kcm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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