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이슈 논평
금융시장 규제, 위기 해결책인가?
0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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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석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회의론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최근 어느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이번 금융위기는 파생상품시장의 무질서가 원인이며, 향후 감독대상 중 하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필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향후 어떻게 파생상품의 거래를 감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고, 투자기관의 일별 파생상품 포지션에 기초하여 해당 투자기관이 거래하고 있는 파생상품의 리스크 측정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금융공학이나 파생상품에 문외한이지만 곧바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파생상품의 리스크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얼마 전까지는 어째서 파생상품을 만든 당사자들조차 리스크 측정이 되지 않는 소위 ‘나이티안 불확실성(Knightian uncertainty)’ 문제가 발생했단 말인가? 시카고대학의 나이트(Knight) 교수는 그 이전까지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되던 ‘리스크’와 ‘불확실성’에 대해 ‘리스크’는 측정될 수 있는 것이며, ‘불확실성’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측정이 불가능한 리스크를 일반적으로 ‘나이티안 불확실성’이라고 일컫는다.
기술적으로 리스크 측정이 매우 복잡하게 변해버린 파생상품을 금융감독 당국의 일단의 인력이 일일 포지션 확인만으로 감독하겠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리고 불완전한 방법으로 측정한 리스크에 기초하여 당국이 투자기관의 파생상품 거래를 규제한다면 실효성은 떨어지고 국내 금융시장은 오히려 발전이 더뎌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파생상품시장의 위험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파생상품시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한 번 만들어진 파생상품 역시 계속 거래될 것이다.
한편,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금융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제기한 사람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미국의 투자가 조지 소로스이다. 최근 국내 주요 일간지에 기고된 칼럼에서 조지 소로스는 금융시장 자체의 기능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낸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로스야말로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자산에 투자하여 큰 이익을 보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른 논리를 적용했다는 점 이외에도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소로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첫째, 소로스는 이번 금융시장에서 비롯된 위기를 놓고 볼 때 전통적 경제이론으로는 금융시장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현실적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가 어느 정도 합리화된다고 했다. 그러나 가격의 거품과 이후 거품 붕괴위험은 금융뿐만 아니라 모든 시장에 도사리고 있다. 부동산시장, 고학력자의 실업사태를 빚는 노동시장 등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가격의 거품이 형성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붕괴되는 것이야말로 시장 수급의 본래 기능이 작동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즉 가격이 실제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하게 오르면 시장은 거품이 낀 가격대신 실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 가격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둘째, 이번 금융위기는 확률의 문제인 측면이 있다.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가 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동차나 비행기를 버리고 걸어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의 발생은 결국 ‘확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가 매일 발생한다면, 사람들은 아무리 편리해도 자동차나 비행기를 운송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4년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인 머튼과 숄즈 등을 영입하여 초기에는 40%의 수익을 올리다가 1998년 러시아 정부의 모라토리움(대외채무 지불유예) 사태 이후 큰 손실을 본 LTCM 헤지펀드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많은 이들은 헤지펀드의 무모함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여전히 운용되고 있으며, 우리 주변에 주식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는 항상 있지만, 주식시장이 완전히 문을 닫는 사태는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지만, 주식투자의 평균 수익률이 결국 예금금리보다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투자자들은 계속해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다. 2008년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이 매년 한 개씩 망했다면, 오늘날 미국의 투자은행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주식시장 상황을 초래한 경제위기 상황은 과거 120여 년 동안 10개에 불과했다.
셋째, 소로스는 새로운 금융상품이 시판되기 이전에 금융 감독당국의 승인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파생상품과 같이 상품의 속성이 복잡하며 무수히 많은 여타 금융상품과 연계된 경우 그 상품에 내재된 리스크나 기대수익률을 파악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실제로 소로스 역시 규제의 단서로 ‘최소한의 범위’를 달고 있다. 결국 금융시장 규제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금융시장 규제의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를 볼 때 인간이 경제활동을 통해 생산한 결과물은 점점 더 빠르게 증가하는데, 경제주체들의 소비는 전체적으로 볼 때 크게 증가하지 못한다. 결국 남아도는 잉여생산은 투자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투자할 대상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철도나 통신, 전기 등 초기 투자에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산업은 이미 다 포화상태에 접어들었으며, 향후 미래의 산업들은 IT산업 등 물리적인 투자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업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전에 비해 잉여생산은 더 많아졌는데 투자대상이 될 만한 산업이나 설비분야는 한정되어 있는 셈이다. 이는 바로 MIT대학의 카발레로 교수가 언급한 소위 ‘자산 부족현상(shortage of asset)’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식량난이 줄어들었음에도 최근 들어 때 아닌 국제시장에서의 곡물 값 폭등이라든가, 갑작스러운 유가 인상 등은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대규모 자본의 투기적 수요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대상을 무한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금융산업이 엄청나게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토지나 생산설비에 남아도는 자본을 투자하던 과거의 형태에서 더 나아가 생산설비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A라는 금융상품 (편의상 원천상품) 자체가 투자대상이 된다. 다시 말하면 금융상품 B는 금융상품 A라는 자산을 투자대상으로 하며, 금융상품 C는 금융상품 B를 투자대상으로 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기대수익과 위험도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 무수히 많은 금융상품이 서로 얽히게 된다. 파생금융상품은 이렇게 추가로 만들어진 수많은 여타 금융상품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금융상품이 이미 개발된 마당에 생산설비 투자 목적 이외의 모든 복잡한 파생상품을 없앤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소로스나 얼마 전 토론회에서 만난 참석자들 역시 파생상품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범위 내에서 감독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개별 파생상품을 일일이 검토하려면 감독비용이 매우 클 것이다. 이런 비용을 감수할 만큼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시 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가 금융시장의 규제를 높이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의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좀 더 힘써야 할 위기극복 방안은 무엇인가? 바로 금융부문이 아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물부문의 경제주체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현 상황에서는 단기적이면서 강도 높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저렇게까지 하는데 경제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경제정책의 반대급부를 고려할 때 시행기간은 단축시켜 경제시스템에 심각한 타격이 오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의 내용이 쉬워야 한다. 현 위기상황을 구실로 금융시장 규제라는 뒷걸음질이 아닌, 단기간 내에 강도 높은 정책으로 고조된 위기의식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위기의 시작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파생상품시장에서 비롯되었으나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이미 경제주체들은 고통스럽지만 간단명료한 해결책을 실천해 나아가고 있다. 미국의 크라이슬러, 지엠, 포드자동차의 조업 단축, 일본 소니의 감원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실물부문의 경제주체들은 고통스러운 해결방안을 몸으로 실천하는 시점에 금융정책 당국은 파생상품시장을 감독하려고 파생상품에 대해 공부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일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기업의 고통스러운 조정과정 후에 다시 수익이 개선되면 투자자들은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서 금융시장에 다시 돈이 돌기 시작하고 기업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는 기업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경제위기가 빨리 끝나 기업활동이 정상화될 수 있게 말이다. 하지만 만일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시장 규제를 강화시킨다면, 이는 위기 상황이 끝난 후에도 계속 남게 될 것이다. 금융당국은 서둘러서 현실성 없는 규제마련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지금 이 시간에도 생존을 위해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을 도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규제는 만들긴 쉬워도 한 번 만들고 나면 다른 법, 제도와 복잡하게 얽혀서 결국 없애는 데 몇 배의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송정석 (중앙대 상경학부 교수, jssong@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