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이슈 논평
최근 환율변동의 원인 및 전망
09.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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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권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넘어서며 1998년 3월 외환위기 당시의 수준으로 재진입했다. 지난해 말 1,257원까지 하락했던 원/달러 환율은 2월 23일 1,500원을 돌파한 후 2월 27일에는 지난해 고점인 1,525원을 넘어섰고 3월 2일에는 장중 1,596원까지 치솟은 후 당국의 시장개입으로 3일 1,552원에 마감했다.
이 같은 환율 급등세는 외환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간 것이었다. 지난 1월 초만 해도 상당수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외국인의 주식순매수 및 국책은행의 외화조달 성공 등으로 외환 수급사정이 호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말 1,250원대로 하락했던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외의 잠재적 불안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4분기 마이너스 6.2% 성장 등 미국의 경기침체 심화와 은행 실적 악화에 따른 대형 은행 국유화 등 미국발 신용경색의 재연 가능성이 안전통화인 달러화의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 환율 급등의 주된 원인이다. 게다가 EU지역의 금융경색 여파가 주변 중·동유럽과 러시아 등으로 확산되면서 이들 지역의 디폴트 리스크가 증대함에 따라 신흥시장국 통화에 대한 불안심리가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 불안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디레버리징(차입 축소)과 연계된 외국인의 대량 주식 매도가 환율상승세를 떠받치고 있다. 외국인은 2월 10일 이후 약 보름동안 2조4천억 원 이상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우리나라의 신용위험도를 나타내는 CDS(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은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400bp대로 급등하고 3월 2일에는 449bp로 치솟았다. 미국의 금융 불안과 동유럽 부도 위기의 여파로 국내은행의 외화자금 차입여건이 악화되면서 외화유동성 부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었다. 1월 산업동향 등 각종 국내 경제지표의 불안과 수출부진에 따른 1월 경상수지 적자 반전도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를 높여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경고 등 남북관계의 긴장고조와 일부 외신의 한국경제에 대한 잇따른 부정적인 뉴스와 3월 배당철의 역송금 달러수요 증가 등도 환율 상승요인으로 작용했다.
파죽지세로 치솟은 환율은 1,600원대 돌파를 시도했으나 당국의 시장개입으로 3일 이후 다시 1,550원대 이하로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 불안과 경기침체 등으로 환율이 급등했으나 그 상승폭이 지나치다는 고점 경계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시장개입은 그동안 환율 상승세를 저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수단이었다. 정부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해외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수출 증가를 위해 원화약세를 용인하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나 유가 및 원자재가격 하락 덕분에 주춤하던 소비자물가가 지난 2월 전년 동월보다 4.1% 올라 한 달 만에 다시 4%대로 복귀함에 따라 당국의 시장개입 여지는 커지고 있다. 국제원자재 가격하락과 내수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고 있는 데도 물가가 다시 불안해진 것은 주로 환율급등 탓이다. 당국은 1,600원이 뚫리는 과도한 환율 급등을 방치할 경우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 외환보유액 부담을 안고서도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환시장의 불안은 이것으로 진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2,000억 달러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국의 강도 높은 시장개입이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시장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 2월부터 12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권의 외화차입금 383억 달러(외국계 은행을 제외한 국내은행의 경우 245억4천만 달러)의 26%인 100억 달러(국내 은행 55억8천만 달러)가 3월 중 만기가 도래해 외화수급난은 가중될 전망이다. 당국의 시장개입으로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1,500원대에서 진정국면을 맞고 있으나 개입 강도가 약화되고 글로벌 금융 불안이 다시 심화되면 3월 중 1,600원선을 넘어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경기가 회복돼야 불안요인이 제거되어 국제금융시장도 안정될 수 있는데 단기간에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당분간 환율이 고공행진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환율이 미국·유럽 등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에 달려 있어 이들 나라들이 어떤 대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의 시티은행 국유화에 이어 3월 말 이후 GM 파산이 현실화되면 국제 금융시장은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일 것이다. 그럴 경우 1,600원선 을 쉽게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경상수지가 앞으로 흑자 기조가 정착될 가능성이 높은 점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수출부진에도 수입 감소 및 여행수지 개선 등에 힘입어 경상수지가 13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도 장담하기는 어렵다. 고환율 효과로 글로벌 불황 속에 수출이 선전하고는 있으나 낙관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130억 달러의 흑자로도 달러부족을 메우기는 역부족이라는 견해도 많다. 더욱이 2월 신규 수주가 한 건도 없을 정도인 조선업체들의 수주부진 및 조선업체의 수주 취소 우려는 외화 수급상의 불안감을 가중시킬 것이다.
환율상승의 또 다른 요인인 금융기관 건전성 문제와 기업구조조정 등도 해결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4월은 지나야 외환시장의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의 외화자금난이 1/4분기를 고비로 점차 완화될 전망인 점도 2/4분기부터 원화 약세가 심화될 가능성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외국계 은행을 제외한 국내은행의 월별 외화차입금 상환 부담액은 3월의 55억8천만 달러를 고비로 4월의 8억 달러, 5월 17억7천만 달러, 6월 28억 달러의 흐름을 보이다가 7월부터 12월까지는 월평균 14억6천5백만 달러로 감소하게 된다. 하반기 중 은행의 외화차입금 상환을 위한 달러 수요는 크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환율수준은 일부 외신이 국내 경제여건을 실제보다 나쁘게 보도하고 있는 데다 3월 위기설 등 각종 국내외 악재가 맞물리고 있는 가운데, 이 틈을 타 역외세력의 환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실제 시장 상황보다 위기가 과장된 측면이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시장의 공포심리가 사라지면 순식간에 1,300원대 이하로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 하반기의 환율은 하향안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통화완화정책에 힘입어 세계경제가 하반기에 완만한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글로벌 신용경색의 완화와 외화조달 여건의 개선으로 원/달러 환율이 3/4분기에는 1,250원대, 4/4분기에는 1,200원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GM 파산 가능성의 현실화, 대형 금융기관의 추가 국유화 등의 여파로 미국경제가 올 하반기에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L자형 불황에 진입하여 금융 불안이 지속될 경우 환율 안정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kah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