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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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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법과 제도이슈

우리 FTA 정책의 평가와 과제

0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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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그동안 우리가 추진해 온 FTA 정책은 성공적인 FTA 체결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낳았으며, 향후 통상정책 전반의 추진에 있어 적지 않은 부담을 지우고 있다. 다른 OECD 국가와는 달리 구조적으로 대외무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우리 경제가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FTA 추진을 통해 개방의 효과를 장기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FTA 체결 국가 수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가장 근본적 문제점 중의 하나는 FTA 지지세력인 ‘수출지향집단’과 저지세력인 ‘수입대체지향집단’ 간의 대립구도가 대칭적으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칠레 FTA 추진과정에서 국내 열위산업 보호에 최우선 가치를 부여하는 ‘수입대체지향집단’은 과수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칠레와의 FTA를 전체 농업분야의 장기적인 개방문제로 연결시킴으로써 전국적인 반개방 문제로 정치 이슈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농민단체는 물론, 경제실천국민연합, 전국민중연대, 노조 등의 시민단체들이 반FTA운동에 합류하여 대대적인 NGO운동으로까지 그 성질이 변화하였다. 반면, 수출지향집단은 한-칠레 FTA 체결에 따른 이익을 일부품목의 수출증대라는 경제적 의미로 좁게 규정해 버렸고, 2003년 하반기 FTA 국회비준동의가 불투명해져서야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제 5단체를 중심으로 FTA 지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이미 정치 이슈화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커다란 대가가 요구되었으며, 정부는 반대진영 중 온건세력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피해집단에 대한 과도한 보상의 약속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보상의 목적이 비교열위 산업의 기술경쟁력 제고 및 비교우위 산업으로의 업종전환에 초점이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래식 단순농업 부문을 존속시키는 방향으로 현금성 소득보전을 제공한 것은 오히려 중장기적인 농업부문의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일시적으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근시안적인 보상방식을 동원함으로써 한-칠레 FTA 비준을 쟁취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해결의 선례는 이후의 FTA 추진과정에서 도덕적 해이와 과도한 보상요구를 촉발시켜 우리 FTA 정책 전체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반FTA 연대의 압력은 그 후 체결된 싱가포르(2005년 8월) 및 EFTA(2005년 9월)와의 FTA 협상과정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 결과로 정부는 국내 반대집단의 관심품목을 FTA 관세 철폐 대상품목에서 제외함으로써 이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데 협상의 주안점을 두었으며, 갈수록 이러한 예외품목의 범위는 증폭되었다. 이러한 무역자유화 후퇴 경향이 ASEAN (2006년 8월 상품분야 협정서명)과의 협상에서 절정에 달한 것은 물론이었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도 FTA 반대진영의 조직적이고 대중적인 선전과 협상중단을 위한 캠페인에 정부의 협상노력은 번번이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데올로기적인 반미감정까지 작용하여 한-미 FTA 반대운동은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이전까지 결집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수출지향집단은 우리 최대의 교역시장이자 투자 상대국인 미국과의 FTA를 맞아서는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 경제 5단체를 중심으로 조직적 로비를 진행하였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수출의 주역들이 FTA 체결을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주요 언론사들이 이들의 입장과 논리를 대서특필하기 시작함에 따라 한-미 FTA 체결의 당위성이 부각되는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어 갔다. 그에 따라 수입대체지향집단과 수출지향집단 간의 세력의 균형이 형성되었고, 정부는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협상 이슈들 간의 이익형량에 따라 미국과의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농산물을 제외한 상품분야에서 100% 품목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고, 전체의 94% 수입량에 대해 관세를 조기철폐하기로 합의하는 등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협상 전 과정에 걸쳐 공청회가 무산되고, 졸속협상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으며, 협상정보의 미공개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비판이 확산되었으며, 국회와 정당을 통한 이익집약 기능의 부재로 인해 이익집단들이 대중적인 저항의 형식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또한 산업피해에 대한 보상원칙을 사전에 제시하고 합리적 구조조정을 위해 새로 마련된 ‘제조업 등의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률’의 경우에도 그 내용상 형평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FTA 협상을 비롯한 통상정책 결정 절차에 관한 사항들이 법제화되어야 한다. 제도화된 틀 속에서 정부와 국회간의 합리적 권한배분 원칙에 입각하여 상호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협상관련 정보의 적절한 공개와 이익집단들의 의견 표출에 관한 사항을 법제화하여야 한다. FTA 협상 이슈와 관련한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내 이익집단 대표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및 중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협상 개시 이전단계부터 제도화된 의견수렴을 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의 FTA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사후 보상과 정치적 보상의 문제점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현행 ‘제조업 등의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률’의 시행에 있어서도 근로자에 대한 지원을 대폭 증액하여 효과적인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직업전환을 촉진하고 그 과정에서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아울러 기업지원의 경우 폐업을 포함한 사업전환 관련 컨설팅에 대한 지원 비중을 확대하여 경제적 효율성이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도록 해야 하다.

대외의존성이 높고 지정학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FTA 정책의 장기적 추진방향과 원칙에 관련된 사항의 법제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즉, 편단화되는 FTA를 상호 연결하여 FTA 간의 상응성을 높이고 경제블록 간의 공통분모를 넓혀가는 노력을 체계적으로 기울여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 노력을 통해 FTA 간의 원산지 규정의 통일을 위한 모델화를 진행하여야 하며, 세관절차, 통관, 무역구제, 지재권, 경쟁, 노동 및 환경규범, 투명성, 투자규범, 전자상거래, 위생 및 기술규정 등 분야에서의 통일 법제화 작업이 순차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1998년 12월 한-칠레 FTA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FTA 체결 정책에 첫발을 내디딘 지 10년이 되어 간다. 이제는 민주적으로 법제화된 절차를 통한 이성적인 설득과 협의에 의해 FTA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나가고, 그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해나가는 것만이 우리 FTA 정책을 포퓰리즘적 정치적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잡게 하는 길일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과대학 교수, wmchoi@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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