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양자 간 대화에 거는 기대
- 2009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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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9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일정을 공식화했다. 다음 달 8일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이후 공식적인 특사자격으로는 7년여 만에 처음 방북한다고 한다. 북한이 지난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 핵실험, 7월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최근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사건 등 일련의 한반도 긴장 고조를 지속시키는 가운데 추진하는 미 특사의 방북이어서 한미 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핵은 북미 양자 간의 문제 아니다
미국은 이번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이 북미 간 ‘협상’ 차원이 아니라 단순한 ‘대화’로 추진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북한의 핵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는 북미 양자 간 협상이 아니라 다년간 추진되어 온 6자회담의 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이 기회를 협상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고, 6자회담의 방식으로 핵문제를 풀어나가지는 않을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미국이 이번 방북을 ‘대화’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공식화했지만, 북미 대화가 일단 재개되면 어떤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지난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북미 양자 간 협상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1994년 10월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는 북한으로부터 핵개발 포기와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유보를 이끌어내고 반대급부로 북한에 경수로 지원을 약속하는 합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 포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핵개발을 꾸준히 추진해 왔음이 드러났다. 경수로 지원 측면 역시 미국의 협상이 한국과 일본의 재정 부담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이행이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약속이 아니었다. 즉 처음부터 북미 양자 간 협상으로 도출해낼 합의는 전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7년 2월 13일 채택된 2ㆍ13 합의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채택된 합의이지만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월 베를린 접촉까지 세 차례에 걸친 북미 양자 간 협상에 의한 합의인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할 필요 없이 2ㆍ13 합의도 주변 관련국들의 재정 부담이 필요한 것에 북한의 핵 폐기 검증에 대한 구체적인 공감대가 주변 관련국들로부터 형성되지 않은 문제는 제네바 기본합의와 다를 바 전혀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련 당사국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조체제 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폐기와 관련하여 어떤 제안을 하거나 약속을 보장하더라도 그 이행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작은 제안으로 시작하더라도 이를 지켜나가는 과정이 확연히 드러나면 더 큰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제안이 타결되더라도 그 이행 과정이 분명하지 않고 주변 당사국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없고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북 대화든 협상이든 핵 포기 전제돼야
방북하는 보즈워스 미 특사가 북한 측과의 대화에서 집중해야 할 부문은 두 가지이다. 먼저, 과거 북한이 취해오던 방식, 즉 한반도와 주변지역을 무력으로 도발ㆍ위협하면 주변국들은 보상을 제공하는 패턴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북한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핵 폐기를 실행하는 것이 해법의 단초임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는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행동, 즉 북에 대한 보상과 관련한 모든 협상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관철시켜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 주변국들의 지원 등은 보즈워스 미 특사가 북한과의 양자 대화에서 협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미국과의 공조, 주변국과의 공감대 형성은 우리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할 사안이다. 일본은 물론이요, 북한의 전통적인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해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북한의 핵 폐기는 양보할 수 없는 제1 원칙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협상을 공동보조로 취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서 대북 공조 확인한 셈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없음을 확인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9월 이명박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제안하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화답하는 방식으로 보즈워스 대북 특사의 방북을 공식화한 점은 한미 공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도 보즈워스 미 특사의 방북을 미국과의 양자 협상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할 것이다. 이번 방북이 현실적인 해법을 추구하는 그래서 주변 당사국들과 공동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정연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yhchung@keri.org)